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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수리 ‘先 손해사정’ 첫발 뗐지만…
  • 이병문 기자
  • 등록 2020-06-04 12: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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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백만 원 이하 우선 적용…혼란과 갈등 속 아직 갈 길 멀어


▲ 자동차정비 모습.


자동차보험 가입차량 수리 전 손해사정을 먼저 진행하도록 하는 () 손해사정제도가 첫발을 뗐지만 도입 초기의 혼란과 갈등 속에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4일 정비업계와 보험업계에 따르면 자동차 수리 전 선 손해사정제도의 시범운영이 지난 56일부터 서울지역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다. 시범운영 기간은 1년간이다. 참여 보험사는 삼성·현대·DB·KB 등 주요 4개 손보사, 정비공장은 3일 현재 141개 업체가 신청했다.

 

선 손해사정200만원 이하의 수리비(부가세 포함)가 산정되는 경우에만 우선 적용한다. 지난해 기준 사고 한 건당 자동차 평균 수리비 수준(국산차 114만원, 수입차 282만원)을 감안한 것이다.

 

이 제도는 자동차 사고 발생 시 수리범위와 금액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비업체가 우선 수리를 개시하고, 이후 보험사가 손해사정을 통해 수리비(보험금)를 책정해오던 기존 관행을 깨는 것이다.

 

보험사가 정비업체의 수리 견적서에 대한 손해사정 내용을 차주와 업체에게 먼저 제공한 후에 수리정비가 이뤄지는 방식이다. 차주는 수리 내용과 본인의 보험금 규모를 미리 안내받아 수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정비업체는 보험수리 금액과 범위가 수리 전 확정돼 손보사와의 수리비 분쟁을 사전 예방할 수 있다.

 

기존의 선 수리, 후 손해사정방식은 정비업체와 손보사 간 다툼 소지가 있다. 또 차주에게도 상세한 손해사정 내역이 제공되지 않아 자기부담금과 보험료 할증 규모를 알지 못한 채 수리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 차 수리가 제대로 되었는지, 정비요금은 적정한지에 대한 소비자의 의문이 생기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선 손해사정의 시범운영에 들어간지 한 달 가까이 됐으나 일선 정비업체들은 아직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정비업체와 보험사 간의 불필요한 분쟁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지만, 미리 손해사정 절차에 들어가면 일어나는 부작용과 문제점도 많다고 말한다.

 

우선 정비 과정에 제약이 많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동차를 수리하는 과정 중 다른 문제가 발견돼도 손해사정에 포함된 내역이 아니면 수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선 손해사정에서 산정된 금액보다 수리비가 큰 사고 건의 경우 되레 분쟁이 야기될 수도 있다.

 

선 손해사정견적서에는 공임 외에 부품대, 견인비 등이 모두 포함돼 정비업체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자동차 수리비 중 50%의 비중을 차지하는 부품대를 정비업체의 수입으로 잡는 통에 실제 매출도 아니면서 장부상의 매출이 늘어나게 됐으며 이로 인한 세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손보사들이 부품대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아 부품공급업소와 갈등을 겪게 되기도 한다. 손해사정이 끝난 뒤 수리를 시작하면 정비 시간이 지연되기도 하고 고객들의 보험 혜택이 줄어들 가능성도 높다. 이로 인한 고객들의 불만을 모두 정비업체가 안아야 한다는 점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정비사업자들이 많다.

 

이 같은 문제들로 선 손해사정을 신청하는 정비공장들이 기대보다 많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자동차검사정비조합에 따르면 3일 현재 선 손해사정신청 업체 수는 141개사로 전체 400여 조합원 업체의 35% 정도다. 실제 서울지역 정비공장이 520여개인 점을 감안하면 선 손해사정에 참여하는 정비공장 비율은 이보다 더 떨어진다.

 

손보업계는 선 손해사정도입으로 과잉수리비를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은 정비업체에서 청구하는 수리비가 적정한지 의구심이 들어도 요구하는대로 지급 할 수 밖에 없었으나 선 손해사정으로 합리적인 수준의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손보사들도 선 손해사정에 대해 정비업체가 수긍하지 못할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고 말한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만약 부실한 정비로 논란이 생겼을 때 정비업체들이 손해사정 결과에 따른 것이라며 책임소재를 손보사에 떠넘길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손보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자동견적 시스템인 ‘AOS알파를 쓰지 않고 다른 견적 시스템을 사용하는 정비공장도 있다 보니 업무 가중과 불편을 겪고 있는 직원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현실을 볼 때 선 손해사정제도가 이제 막 첫발을 뗐지만 아직 남은 과제가 산적해 있으며 갈 길이 멀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선 손해사정제도는 민정 상생협력의 산물이다. 지난해 1017일 서울시와 중소벤처기업부, 국토교통부, 더불어민주당, 4개 손보사, 전국자동차검사정비연합회, 서울자동차검사정비조합, 소비자연대 등은 자동차 보험정비 분야의 건전한 발전과 소비자권익 증진을 위한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상생협약 체결 후 6개월이 넘도록 별 진전이 없다가 지난 56일 첫발을 뗐다는 사실은 정비업계와 보험업계 간 협의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정은 시범운영 결과를 분석해 전국 확대를 논의할 예정이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결국 정비요금에 대한 손보사와 정비공장 간 간극을 좁히지 못하면 선 손해사정도 궁극적인 개선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정비요금 분쟁은 수리 전후로 손해사정이 이뤄지는 시점만 바뀐다고 해서 해결될 사안이 아닌 것이다.

 

이병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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