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아무런 대책 없이 택시업계의 주력 차종인 쏘나타 LPG택시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밝혀 택시업계가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현대차가 현재의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택시 같은 내수시장이 밑거름이 됐기 때문인데, 이를 무시하고 오직 자사의 이익 증대만을 위해 가격 인상의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22일 택시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현재 판매 중인 쏘나타 LPG택시를 단종할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현대차는 영업 일선에 쏘나타 택시 생산을 이달 말로 중단한다며, 신규 계약을 받지 말라고 안내했다. 현대차 홈페이지에서도 쏘나타 택시 모델 소개는 사라졌다.
현대차 쏘나타는 우리나라의 대표 중형 세단 모델이다. 1985년 첫선을 보인 후 2019년 3월 8세대(DN8)까지 나왔으며 최근 8세대 부분변경 모델인 ‘쏘나타 디 엣지’가 출시됐다. 쏘나타 택시 모델은 1991년에 출시된 후 현재까지 32년간 국내 택시의 대표 차종으로 자리매김했다.
쏘나타 택시는 주행 편의성이 높고 가격도 합리적이라 택시업계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와 지금까지도 ‘택시=쏘나타’라고 인식되고 있다. 현재의 쏘나타 택시는 2014년 3월 출시된 7세대 LF모델을 기반으로 제작된 ‘LPi 2.0 뉴라이즈’이다.
전국택시연합회에 따르면 올 3월 전국의 택시 등록대수는 22만8482대로 이중 54.8%인 12만5266대가 쏘나타다. 쏘나타 외에 기아차의 K5와 르노코리아의 SM5가 한 때 인기를 끌어 다수 있지만 각각 2021년 9월, 2019년 6월 단종됐다. 최근엔 전기차가 늘어나면서 전기택시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다.
현재 내연기관 택시 모델은 현대차가 쏘나타 및 그랜저, 형제기업인 기아가 K8를 생산·판매하고 있다. 전기택시는 현대차가 아이오닉5, 코나를, 기아가 니로, EV6 등을 내놓고 있는데 택시업계 입장에서는 쏘나타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현대차의 신형 그랜저 택시 모델인 ‘디올 뉴 그랜저’는 3580만원부터 시작하는 높은 가격 탓에 영세한 택시업자들이 선택하기가 어렵다. 쏘나타 택시(2043만원)와 가격 차이는 무려 1537만원이다.
기아는 준대형인 K8 택시 모델(2795만원) 1종을 판매하고 있으나 역시 쏘나타 택시와 가격 차이가 크고, 중형택시로 사용하기에는 주행 성능이 적합하지 않아 택시업계가 외면하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들어 전기차 보급이 늘면서 전기택시 비중도 높아졌으나 전기택시는 충전 문제 등으로 아직 보급확대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기존 내연기관 차량인 쏘나타 택시의 지속적인 공급이 필요한 이유다.
현대차에 따르면 현재 쏘나타 택시 계약 대수는 2만 2000여대로 차를 받기까지 1년 이상 대기해야 한다. 현대차는 쏘나타 택시를 다음달까지 2500여대 출고하고 단종할 계획이라 약 2만여대가 차를 받을 수 없게 됐다.
쏘나타 택시 계약서에는 쏘나타 택시가 단종될 경우 계약을 무효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현대차가 사전에 쏘나타 택시 생산 중단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자동차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쏘나타 택시 판매 중단설’이 그치지 않았다. 현대차·기아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택시의 고급화(그랜저·K8을 택시 주력 모델로 삼는 것)와 전기차 전략을 취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당분간 내연기관인 그랜저와 전기차인 아이오닉5, 코나 일렉트릭 등으로 영업용 택시 라인업을 유지할 예정이지만 7세대 쏘나타 택시 모델을 단종하는 대신 8세대 쏘나타(DN8) 택시 모델을 출시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현대차는 8세대 쏘나타 출시 당시 쏘나타에 덧씌워진 ‘택시’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 택시 모델을 출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지만 8세대 쏘나타 판매가 저조하자 결국 택시로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8세대 쏘나타는 일반 자가용 및 렌터카용으로 LPG 차량도 나오고 있어 당장 택시 모델로 쓸 수 있다. 하지만 가격은 2875만원부터 시작해 현재 쏘나타 7세대 모델보다 832만원이 더 비싸다.
택시업계는 현대차가 결국 택시의 주력 모델을 그랜저나 전기차, 또는 8세대 쏘나타로 바꿔 가격을 올리기 위해 기존 7세대 쏘나타 택시를 단종하려 한다며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특히 최근 경기 침체로 인한 택시 이용수요 감소 및 운송원가 급등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처지에 차량가격 증가로 경영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더불어, 쏘나타 택시를 받기 위해 1년 이상 기다리는 등 사실상 택시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거대 기업 현대차에 쌓여 있던 불만이 폭발해 대규모 항의집회 및 현대차 불매운동 등을 펼치자는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전국택시연합회와 전국개인택시연합회는 21일 국토교통부와 현대차에 이 같은 상황을 설명하고 기존 쏘나타 LPG 택시의 계속 생산 및 보급, 전기택시 보급 활성화를 위한 대책 마련을 요청했다.
서울개인택시조합 관계자는 ”현대차는 택시 같은 내수시장을 밑거름으로 현재의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로 우뚝 설 수 있었다“며 ”가격 인상을 위한 꼼수를 부리지 말고 ‘쏘나타 택시의 계속 생산’으로 택시업계와 의리를 지키고 상생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현대차는 쏘나타 9세대 모델 연구개발에 들어가지 않아 시장에서는 쏘나타 단종설이 꾸준히 제기된다. 차량 개발에 통상 5년 안팎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9세대 쏘나타의 등장은 아직까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8세대 쏘나타가 사실상 마지막 쏘나타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