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앞 택시
택시 운행 중 발생하는 이동 경로와 승·하차, 운행 시간 및 결제 데이터의 소유권과 활용권을 둘러싸고 플랫폼 기업, 택시업계, 그리고 정부 간의 갈등이 본격화할 조짐이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자율주행, 서비스형 모빌리티(MaaS), 맞춤형 광고 등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핵심 자산으로 택시 데이터가 급부상하면서, 이를 선점하려는 플랫폼과 권리를 주장하는 택시업계 간의 '데이터 주권' 분쟁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 택시노조, 카카오모빌리티에 단체교섭 요구
택시 데이터 주권 논란의 중심에는 카카오모빌리티 등 대형 모빌리티 플랫폼이 있다.
플랫폼사들은 자신들이 구축한 애플리케이션 인프라와 매칭 알고리즘을 통해 비로소 데이터가 정제되고 가치를 지니게 됐다고 주장한다. 서버 유지비와 기술 개발비를 투자한 만큼, 데이터의 관리 및 활용 권한은 플랫폼에 있다는 논리다.
반면, 택시업계는 데이터의 원천이 운전기사들의 '노동'과 '차량 자산'에서 나온다고 반박한다. 기사들이 위험을 감수하며 도로를 달리고 승객을 실어 나른 결과물인 데이터의 이익을 플랫폼이 독점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전국택시노조연맹은 택시노동자들이 매일 주행을 통해 축적하는 방대한 데이터가 카카오모빌리티 등 플랫폼 서비스와 자율주행 기술의 핵심 자원으로 쓰이고 있으나, 노동자들은 그 활용 내역을 알기 어렵고 경제적 가치 배분에서도 배제돼 있다고 주장한다.
전국택시노조연맹은 산하 단위노조들로부터 교섭권을 위임받아 카카오모빌리티 측에 단체교섭 요구 공문을 전달하는 등 운행 데이터 활용 및 처우 개선 문제를 공식 쟁점화하고 있다.
◇ 수익배분·승객 개인정보 침해·공공재적 성격 쟁점
택시 데이터 주권을 둘러싼 논란은 우선 수익 배분의 정당성이다.
플랫폼 기업은 택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맹사업 확장, 맞춤형 광고, 미래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 등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반면, 데이터를 제공한 택시기사들에게는 아무런 보상이나 수익 배분이 이루어지지 않아 '데이터 착취'라는 반발이 거세다.
택시업계는 플랫폼이 수집한 운행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한다. 배차 알고리즘의 공정성을 검증하고, 기사 스스로 자신의 운행 패턴을 분석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데이터에 접근할 권리(데이터 이동권)가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승객 개인정보 침해와 공공재적 성격도 논란이다.
택시 데이터에는 승객의 탑승 위치, 목적지, 결제 정보 등 민감한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어 이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 침해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대중교통 보완재인 택시 이동 데이터는 도시 계획과 교통 정책 수립에 필요한 '공공재'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합리적인 '데이터 상생 모델' 구축 시급
이처럼 플랫폼 기업, 택시업계, 그리고 정부 간의 갈등이 노출되면서 법제화와 대안 마련을 위한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플랫폼 독점을 막고 데이터 주권을 공공으로 회복하기 위해 자체 '공공 택시 앱'을 운영하며 데이터를 직접 수집·활용하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국회에서는 택시 데이터 관련 세미나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학계와 정치권에서는 '노동 데이터 권리'를 인정하는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유럽연합(EU)의 데이터법(Data Act)처럼 사용자가 자신이 생성한 데이터에 접근하고 이를 제3자에게 전송할 수 있는 권리를 모빌리티 산업에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빌리티 산업의 패러다임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택시 데이터 주권 분쟁은 단순한 이권 다툼을 넘어 미래 노동·자산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플랫폼의 혁신 투자를 인정하면서도 데이터 생산자인 기사들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합리적인 '데이터 상생 모델' 구축이 시급한 시점이다.
이병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