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버스정류장에서 시민이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시가 연간 수백억원대 보조금을 지원하는 마을버스 업체 상당수에서 보조금 부정 집행 등이 드러나 도마 위에 올랐다.
22일 서울시에 따르면 마을버스 전체 회계감사 결과 일부 업체에서 회계 부정과 사적 자금 유용 정황을 확인했다. 대표나 그 가족들이 회사 명의로 고급 외제차를 굴리고 수억원대 무이자 대출까지 받아가는 등 사실상 사금고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서울에서는 140개 마을버스 업체가 252개 노선을 운영 중이다. 이 중 올해 시가 지원한 97개사 중 보조금이 포함된 자금을 버스 사업 외 대표나 가족 등에게 ‘가지급금’ 명목으로 빼준 업체는 36개사로, 규모는 200억원에 달했다. 최대 36억원을 빼간 회사도 있었다.
가지급금은 현금 지출이 있었지만 계정과 금액이 확정되지 않아 임시로 쓰는 미결산 계정이다. 개인 용도로 사용하면 형법상 업무상 횡령·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
A사는 지난해 대표에게 17억여원을 빌려줬다. B사도 대표 일가에 12억원 이상을 장기간 무이자로 대여했다. 일부 업체는 이렇게 빼간 돈을 갚지도 않고 서울시로부터 적자 보전금을 받은 뒤 배당을 실시하기도 했다.
사적 용도로 쓴 자금을 회사 비용으로 계상하는 등 횡령 사례도 적지 않다. C사는 대표 일가가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84㎡ 규모)를 회사 사무실 주소로 등록해 두고 매월 30만원 안팎의 아파트 관리비 등을 비용으로 처리해 왔다.
이 회사는 법인 명의로 벤츠 차량 2대를 포함한 승용차 4대를 업무용 차량으로 유지하면서 리스료·유류비·통행료 등을 회사 경비로 지출했다. 대표에 대한 가지급금 잔액도 2023년 6억5800만원에서 지난해 8억800만원으로 1년 새 1억5000만원 늘었다.
접대비와 여비·교통비, 차량유지비 등 업무 외 경비를 과도 지출한 업체도 다수 확인됐다. 마을버스 운행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경비를 법인카드로 쓰고 증빙 없이 처리했다.
보조금을 부풀리기 위한 편법 운행 사례도 적발됐다. 일부 업체는 반나절만 운행하고도, 마치 정상적으로 하루 전체를 운행한 것처럼 보조금을 두 배 이상 부풀려 수령했다.
한 업체 대표는 마을버스 운송 업체 두 곳을 운영하면서 각 회사에서 자신이 운전기사인 것처럼 ‘운전직 인건비’ 명목으로 총 2000만 원을 받아갔다.
서울마을버스운송사업조합은 서울 대중교통 환승 시스템으로 매년 수백원대의 손실을 보고 있다며 내년 1월 1일부로 환승제에서 탈퇴하겠다며 시의 재정 지원 확대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마을버스 측이 스스로 작성한 재무제표만 봐도 “환승 손실로 업계 전체가 적자”라는 마을버스조합 측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서울시의 지적이다.
흑자를 낸 마을버스 업체는 2022년 25곳에서 2023년 67곳으로 늘었으며, 서울시가 미감사 업체까지 회계 기초자료를 더해 138개사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흑자 업체는 99개사(71.7%)로 집계됐다. 이들이 올린 영업이익은 252억7000만원에 달했다.
서울 마을버스 등록 차량은 1570대로 실제 운행 버스는 하루 평균 1351대다. 219대(약 14%)는 등록만 해둔 채 운행하지 않았다. 시는 하루 버스 1대당 운송비용을 51만원 가량으로 정해놓고 대당 운송수입을 차감한 금액을 지원한다. 하지만 지원 기준을 운행 대수가 아니라 등록 대수로 하고 있어 이들 미운행 차량에도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마을버스조합 측은 “미운행 버스는 대부분 수리 중이거나 예비 버스로 대기 중인 상태”라며 “기사를 채용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운영하는 노선이 많다”고 말했다.
조합은 마을버스가 환승 체계에 편입하면서 발생하는 손실액을 서울시가 100% 보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시는 환승제 합의안에 따라 환승 손실분이 아닌 적자 업체에 한해 지원하는 것이 맞는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마을버스는 시내버스와 달리 준공영제 대상이 아닌 데다 대중교통 환승으로 승객 수가 늘어나는 효과도 있는 만큼 손실액을 모두 시민 세금으로 부담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며 “상당수 업체의 회계 불투명 등을 볼 때 지원금만 더 달라고 요구하는 조합의 행동은 시민의 발을 볼모로 삼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마을버스 재정지원 규모는 2019년 192억원에서 올해 412억원으로 늘었으나 노선별 운행 횟수는 24% 줄어들었다. 또 배차간격, 첫·막차 시간 미준수로 정시성이 떨어지고 인가받은 운행 횟수를 지키지 않는 경우도 다수 확인됐다.
시는 이로 인해 시민 불편이 커졌다고 보고 운행 횟수와 배차 간격 현실화,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한 보조금 지원 방식 개선, 운수사별 엄격한 회계 관리 도입 등을 추진해왔다.
서울시는 마을버스조합과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지난 6월부터 서비스 개선과 보조금 조정을 놓고 협의해 왔다. 10월 초에는 운송원가 일부 상향과 운행 대수·횟수, 배차간격 조정 등에 양측이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조합은 이틀 만에 이를 번복하고 내년 1월 1일부로 대중교통 환승 시스템에서 탈퇴하겠다며 시의 재정 지원확대를 압박하고 있다.
이병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