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쿠팡CLS 본사 앞에서 쿠팡노동조합원들이 택배 없는 날 반대 기자회견에 앞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택배 없는 날’을 놓고 택배기사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10일 택배업계에 따르면 주요 택배사들은 배송기사들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광복절 연휴인 8월 14일을 전후해 ‘택배 없는 날’을 지정, 휴무일로 운영하고 있다.
올해도 CJ대한통운과 한진은 목요일인 8월 14일을 휴무일로 확정해 14~15일을 쉰다. 롯데글로벌로지스와 로젠택배는 토요일인 16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해 15일부터 일요일인 17일까지 총 3일간 휴무가 이어진다.
택배 없는 날은 강제성이 있는 건 아니라 쿠팡과 컬리 등 자체 배송망을 활용하며 주5일제 시행 중인 택배회사들은 참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로부터 늘 참여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이를 두고 쿠팡 등 일부 배송기사들은 “생계와 권리를 위협하는 강제 휴무”라고 반대하고 나섰다.
쿠팡 직고용 배송기사인 '쿠팡친구'로 구성된 쿠팡노동조합은 지난 4일 '택배 없는 날' 동참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이날 쿠팡 물류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본사가 있는 서울 강남구 HJ타워 앞에서 집회를 열고 "택배 없는 날이 업무 부담으로 돌아와 '택배 많은 날'이 될까 두렵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올해 대선일(6월 3일) 당시 사상 처음으로 로켓배송을 중단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대선 당일 택배 업무를 중단했을 때도 현장에 나와 배송 이외의 업무들을 진행했고 이후에도 많은 물량을 배송해야 했다"고 밝혔다.
이어 쿠팡파트너스연합회(CPA)도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쿠팡 CLS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택배 없는 날 참여는 개인사업자인 ‘퀵플렉서’(쿠팡 위탁 배송기사)의 생계에 직접적 타격”이라며 “우리는 부담 없이 휴가를 쓰고 언제 쉬든 일정한 수입이 유지되는 쿠팡의 시스템을 믿고 배송 업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쿠팡파트너스연합회는 기자회견 직후 쿠팡 CLS 측에 택배 없는 날 불참을 요구하는 공식 문서를 전달했다. 쿠팡은 올해도 택배 없는 날 없이 14~15일 정상 배송을 이어갈 방침이다.
우체국 집배원들도 택배 없는 날에 불만을 나타냈다. 전국우정노동조합은 지난달 31일 성명서를 내고 “소포위탁배달원이 쉬는 동안 발생하는 물량을 전량 집배원에게 떠넘기고 있다”며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택배기사들 사이에서 이렇게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
택배 없는 날이 정해진 것은 택배기사들은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일반 직장인들과 달리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고직)로 근무 및 처우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택배 없는 날은 업계 자율규약으로 강제성이 있는 건 아니다. 지난 2020년 고용노동부와 한국통합물류협회, 주요 택배사가 모여 ‘택배 종사자의 휴식 보장을 위한 공동 선언’을 발표하며 매년 8월 14일을 휴무일로 정했다. 택배기사들의 혹서기 건강 보호와 추석 성수기 전 재충전, 가족과 함께하는 여름휴가라는 세 가지 목적을 동시에 충족하도록 설계했다.
택배 없는 날을 두고 상반된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먼저 지난 5년간 온라인 플랫폼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택배 의존도가 높아진 점이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택배 없는 날이 생기기 직전인 2019년만 해도 국내 온라인 쇼핑 비중은 20%가 안됐지만, 올해 상반기엔 53.6%로 오프라인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만큼 택배 서비스를 이용하는 판매자도, 소비자도 증가했다.
특히 택배 시장이 커지면서 택배 기사들의 근로형태와 처우가 다양화됐다. 대다수의 택배 기사들은 개발 택배사 또는 대리점과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본인 명의의 사업자로 일하는 사업자 형태지만, 일부 택배사나 기업 물류팀에서는 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으로 직고용하는 형태도 있다. 택배 없는 날을 반대하는 쿠팡CLS나 컬리 등 일부 물류 인력들이 이에 해당한다.
또 본인이 직접 차량을 소유해 해당 차량을 특정 대리점이나 택배사에 등록해 운영하는 지입제 방식도 나왔다. 이들은 위탁계약과 차량 소유권이 기사 본인에게 있어 영업권을 매매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고용형태에 따라 노동법, 4대보험 유무가 다르고 택배 기사 개개인이 느끼는 근무조건의 안정성은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택배 없는 날을 지정할 경우 누군가에는 적은 수입을 포기하는 대신 큰 휴식을 얻는 결과가 될 수도 있겠지만, 또다른 누군가에는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택배 없는 날 반대에는 중소상공인 단체까지 가세하는 모양새다. 사단법인 한국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는 지난 7일 성명을 내고 “모든 택배사가 ‘택배 없는 날’에 참여하게 되면 중소상공인의 영업에 심대한 타격을 입힌다”며 택배 없는 날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 단체는 농수산물·식품·뷰티 등 각종 상품을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는 중소형 제조사와 판매자들로 구성됐으며 대부분이 대형 택배사의 물류망에 의존해 사업을 영위한다. 이들은 택배가 하루 이틀만 늦어져도 품질에 치명적 영향을 끼치는 신선식품에 타격이 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