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시외·고속버스 휠체어 장애인 이동권 보장 어디까지…
  • 이병문 기자
  • 등록 2026-06-21 19:36:47

기사수정
  • A씨, 대법 ‘실제 탑승 가능한 노선에만 설치’ 판결에 헌법소원

지난 3월3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관계자가 기자회견을 연 뒤 고속버스 계단을 기어오르며 탑승을 시도하고 있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시내버스에서는 저상버스를 통해 이동할 수 있지만, 시외·고속버스는 휠체어를 탄 채 탑승하기 어렵다. 

 

시외·고속버스의 휠체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의 수준에 대한 법적 공방은 10년 넘게 이어져 왔다. 


최근 대법원은 휠체어를 이용해 일상생활을 하는 지체장애인 A씨가 낸 차별구제 소송에서 시외·광역버스의 휠체어 탑승 설비 제공 대상을 ‘원고가 실제 탑승할 구체적·현실적 개연성이 있는 일부 노선’으로 한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A씨는 대법원이 장애인의 이동권과 평등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에 재판소원을 청구했다. 


헌재는 지난 9일 해당 판결의 전원재판부 회부를 결정했다. 헌법소원심판은 통상 접수가 되더라도 청구 요건에 적합한지 먼저 심사한다. 이후 요건 충족이 확인되면 헌법재판관 9명 전원이 참여해 심리를 진행한다.

 

A씨는 지난 2014년 국가와 국토교통부, 서울시, 경기도와 명성운수, 금호고속 등 버스 업체 두 곳을 상대로 시외 이동권을 보장하라며 차별구제 소송을 냈다.

 

A씨는 금호고속에는 시외버스에, 명성운수에는 광역급행·직행좌석·좌석형 버스에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차량을 도입하라고 요구했다. 국토부와 서울시, 경기도에는 저상버스 도입과 고상버스 휠체어 승강 설비 설치를 위한 재정지원을 요구했다.

 

저상버스는 바닥면이 낮아 장애인이 차량에 설치된 경사판을 이용해 휠체어를 탄 채 탑승할 수 있다. 반면 2개 이상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 고상버스는 별도의 승강 설비가 없으면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하기 어렵다.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는 대부분 고상버스 형태다.

 

1심은 2015년 7월 버스 업체가 휠체어 승강 설비를 제공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2심도 “버스 업체가 휠체어 승강 설비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차별행위”라며 1심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22년 2월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금호고속의 시외버스 노선은 전국 각지에 분포하고, 명성운수의 광역형 시내버스 노선은 서울시와 경기도 각지에 분포한다”며 “휠체어 탑승 설비 설치 대상 노선은 원고들이 향후 탑승할 구체적·현실적 개연성이 있는 노선으로 하되, 단계적으로 설치해 나가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서울고법은 2025년 11월 파기환송심에서 A씨의 생활권과 가족 관계를 고려해 휠체어 탑승 설비 제공 대상을 7개 노선으로 제한했다. 금호고속의 서울~부산 시외버스 2개 노선, 명성운수의 서울~고양 5개 노선에 대해서만 단계적으로 휠체어 탑승 설비를 제공하라고 판단했다.

 

A씨는 이에 불복했지만, 대법원은 지난 4월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했다. 이에 A씨는 대법원 판결이 이동권과 평등권을 침해했다며 헌재에 재판소원을 냈다.

 

A씨는 대법원 판단처럼 탑승 가능 노선을 현재 거주지·직장·가족 주거지와 연결된 일부 노선으로만 좁히면, 이사나 이직, 여행·구직 등 새로운 이동 필요가 생길 때마다 매번 소송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시외·고속버스를 이용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2019년 휠체어 사용자도 고속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올해도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시외·고속버스와 전세버스 도입 지원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그러나 현재 휠체어를 탄 채 정기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외·고속버스 노선은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버스업계는 "휠체어 탑승 설비 설치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현실적으로 이용객이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시외·고속버스에 휠체어 탑승 설비를 설치하는 개조 비용은 1대당 약 4000만원이다. 여기에 휠체어 탑승 공간에는 일반 좌석을 놓을 수 없어서 좌석이 4~5석가량 줄어드는데, 우등버스 28석 기준으로 보면 매출액의 약 15%가 감소한다.

 

이같은 사정은 대법원이 휠체어 탑승 설비 설치 대상을 ‘A씨가 실제 탑승할 개연성이 있는 노선’으로 한정한 이유 중 하나다. 모든 버스에 휠체어 탑승 설비를 장착하려면 금호고속은 229억~383억원, 명성운수는 36억~62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됐다.

 

버스 회사들이 휠체어 탑승 설비 비용을 마련하는 것도 한계가 있지만 최근 버스업계의 경영 상황도 좋지 않다. 승객은 감소하는 반면 유류비와 인건비는 오르면서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다. 


버스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시외·고속버스를 이용하는 휠체어 장애인이 얼마나 되겠냐"며 "모든 차량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리프트를 설치하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시내버스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저상버스를 의무적으로 도입하고 있고, 내년부터는 광역버스도 저상버스를 도입한다”며 “휠체어 탑승 시설 설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버스 업체 경영이 많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라 일률적으로 강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