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특보가 이어진 지난 11일 오전 광주 광산구 한 택배회사 물류창고에서 노동자들이 선풍기 아래서 택배 물건을 분류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땀으로 속옷까지 젖는 날도 있어요."
보름 가까이 폭염이 이어진 지난 11일 오전 광주 광산구 한 택배회사 물류창고에서 만난 택배 노동자들은 이른 아침부터 연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열대야로 밤사이 떨어지지 못한 기온은 동이 트자마자 가파르게 상승하며 또다시 무더운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물류창고는 기다란 컨베이어벨트가 이어진 거대한 공장과도 같았지만, 작업의 특성상 모두 야외에서 이뤄졌다.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양옆으로 늘어선 노동자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밀려오는 택배 상자들을 분류해냈다.
두꺼운 천 재질로 만들어진 천장이 햇빛을 가려주고 있었지만,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모두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달궈진 지면에서 올라오는 열까지 더해지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는 게 택배 노동자의 설명이었다.
폭염특보가 이어진 지난 11일 오전 광주 광산구 한 택배회사 물류창고에서 노동자들이 뜨거운 햇빛을 가려놓고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누군가는 민소매 티셔츠와 같은 가벼운 차림으로, 누군가는 햇빛 차단을 위한 토시와 두건,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각양각색의 모습이었지만 더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건 작업장 곳곳에 설치된 선풍기가 유일했다.
후텁지근한 바람이 나오는 게 전부지만 조금이라도 땀을 식힐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운이 없으면 선풍기 바람이 닿지 않거나 햇빛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자리에서 일을 해야하는 경우도 생긴다.
간간이 불어오는 자연 바람까지 기대할 수 있는 분류 작업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사방이 막혀있어 그야말로 찜통과 다름없는 화물칸 안에 들어가 택배 상자를 내리거나 싣는 작업을 하다 보면 금방 기진맥진해지기 일쑤라고 했다.
폭염특보가 이어진 지난 11일 오전 광주 광산구 한 택배회사 물류창고에서 한 노동자가 사측이 비치한 식염포도당과 함께 물을 마시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그렇게 분류 작업을 마친 택배 노동자들은 하루 배달 물량을 소화하려면 기온이 최고조에 달하는 오후 시간에 가장 바삐 움직여야 했다.
한 택배 노동자는 "이 정도 환경은 그래도 나은 편"이라며 "도시를 조금이라도 벗어나 시·군 단위의 물류창고에 가보면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 8일 제주도에서는 택배 상하차 작업을 마친 택배 기사가 식당에서 탈진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받은 것도 이러한 근로 환경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미 수도권에선 닷새간 3명의 택배 노동자가 잇따라 숨지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4일 인천지역 택배대리점 소장(43)은 오전 7시 출근 후 분류작업 등 1시간 30분가량 업무를 한 뒤 "차에서 쉬겠다"며 자리를 떠났다가 숨이 멎은 채 발견됐다.
지난 7일에는 서울 역삼동 구역을 배송하는 택배기사(51)가 오전 7시 출근 직후 구토 증상을 보이며 쓰러졌다가 숨졌고, 다음날에도 경기 연천지역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택배기사(53)가 의식을 잃고 숨졌다.
이들의 사망과 폭염의 연관성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매일 폭염에 노출된 상태로 고강도 업무를 해야 하는 건 바로 오늘의 현실이었다.
폭염특보가 이어진 지난 11일 오전 광주 광산구 한 택배회사 물류창고에서 노동자들이 택배 물건을 나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 노동자들은 폭염 휴식권을 보장하는 등 법적·제도적 안전 장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13일 "사측에서는 교대로 쉬라고 말은 하는데 현장에서는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노동자 건강과 안전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휴식권을 보장하고 환경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