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버스 노조가 연휴가 끝난 뒤 첫차부터 준법투쟁(준법운행)을 재개한 지난 7일 광화문의 한 버스정류장 전광판에 준법투쟁 재개로 인한 운행지연 안내문구가 표시되고 있다.
서울 대중교통체계의 근간인 버스 준공영제와 통합환승 할인제가 서울시와 버스 노사 등 당사자 간 갈등이 한꺼번에 불거지면서 흔들리고 있다.
두 제도 모두 21년 전 처음 도입됐을 때의 형태가 거의 그대로 유지되면서 여러 문제를 낳았다는 분석이다. 이번 기회에 지속 가능하도록 세밀하게 손질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노사 갈등에 '세금 먹는 하마' 비판받는 준공영제
서울 시내버스는 지난 2004년 7월부터 준공영제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도입한 준공영제는 지자체가 버스업체의 적자를 메워주는 대신 취약지역 노선을 유지하는 등 공공성을 확보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안정적인 버스 운행이 가능하고 운수회사가 수익에만 집중하지 않아도 돼 서비스 품질이 향상되는 장점이 있으나 과도한 재정 부담 누적, 민간자본 유입에 의한 공공성 훼손 등은 한계로 지적돼왔다.
과도한 재정 부담 문제는 이번에 시내버스 노사의 임금·단체협약(임단협) 협상이 파열음을 내면서 다시금 수면위로 떠올랐다. 그 중심에는 노사 양측이 이견을 좀처럼 못 좁히고 있는 통상임금 쟁점이 있다.
서울시와 사측은 지난해 12월 나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반영토록 기존 판례를 변경)에 맞춰 이번 임단협에서 임금체계를 개편해 통상임금 수준을 낮추자고 노조에 제안했다.
시는 기존 임금체계를 유지해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반영하고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안(8.2%)을 모두 수용하면 월평균 임금이 약 25% 오르고, 운전직 인건비 총액은 1조6180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이 경우 예산 2800억원 가량이 추가로 필요하며, 재정 투입을 늘리지 않고 요금 인상으로 모두 충당한다면 현재 1500원인 요금을 1800원으로 올려야 한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하지만 노조는 통상임금 문제는 교섭 대상이 아니라며 25%의 임금 인상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박점곤 서울시버스노조 위원장은 "정기상여금 등을 먼저 포기하라거나 임금체계 개편에 동의하지 않으면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는 사측 입장은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는 것"이라며 "조합원 권리를 포기하는 임금체계 개편에는 절대 합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고 강조했다.
이러한 대치 상황은 표면적으로는 임금을 둘러싼 것이지만, 준공영제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준공영제에서는 시가 어떻게든 재정 지원을 할 것이란 믿음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재정 지원이 계속되는 동안 버스 영업손실이 악화한 상황도 문제로 꼽힌다. 서울시는 시내버스에 최근 4년간 총 2조4790억원의 재정지원금을 투입했다. 해가 갈수록 손실 폭이 커지고 있는 것을 두고 재정 지원에 의존해 방만 운영이 심각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현 준공영제는 21년전 민간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버스업체의 적자를 그대로 메워주는 식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가 계속된 만큼 중간에 바꾸려고 노력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 등의 준공영제는 노선을 몇 개씩 묶어 세밀한 수익 분석에 따라 재정을 지원하는 '노선입찰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다른 지자체도 서울시의 준공영제를 차용했기에 같은 한계를 안고 있으므로 현 준공영제 방식을 계속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 마을버스는 추가지원 요구하며 '환승할인 탈퇴' 거론
서울시마을버스운송사업조합은 최근 서울시에 재정지원기준액(보조금) 증액을 요구했다가 수용되지 않자 2004년 7월 서울시 및 서울시버스조합(시내버스)과 체결한 '대중교통 환승합의서'(환승할인제)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마을버스조합은 불합리한 정산비율로 인해 최근 3년간 환승손실액이 총 2370억원에 달한다며 시내버스가 더 받아 가는 현행 정산비율을 동등하게 조정하고, 이를 위해 요금을 현행 1200원에서 시내버스와 같은 1500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는 2023년 8월 요금 인상 효과 등으로 마을버스 업계 여건이 나아지고 있고, 지원 규모 역시 코로나19 전후로 배 이상 늘렸으므로 조합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환승할인에 대해선 시내버스보다 운송원가가 낮은 마을버스에 동일한 정산비율을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마을버스는 준공영제인 시내버스와 달리 민영제로 운영되지만, 공공성을 고려해 시가 환승제로 인한 손해와 운영 손실의 일부를 지원해주고 있다.
마을버스조합은 “서울시에서 먼저 협의 요청을 해 오지 않으면 6월 10일까지 환승할인제 탈퇴를 강행할 것"이라며 "합의서상 탈퇴는 다른 주체들 동의 없이 우리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고, 단말기 교체만 하면 된다. 현재의 환승 시스템을 탈퇴하거나 환승수입금 배분 방식을 변경하는 것이 답"이라고 밝혔다.
현재 교통카드 기준으로 기본요금(1200원)을 내고 마을버스를 탔다가 시내버스나 지하철로 갈아타는 승객은 환승 할인을 받아 300원, 200원씩만 추가로 지불한다. 만일 환승할인제에서 마을버스가 탈퇴하면 시내버스 1500원, 지하철 1400원의 기본요금을 갈아탈 때마다 그대로 내야 해 시민 부담이 커진다.
서울시 관계자는 "환승할인제 탈퇴를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지 법률 검토 중이며 그 결과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마을버스조합이 환승할인을 협상 수단으로 쓰게 된 것 자체가 제도의 미비점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환승할인은 시민의 교통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복지 정책인데, 민영제로 운영되는 마을버스 운수사들에 준공영제인 시내버스 및 시 산하기관인 지하철과 동등한 공적 책임을 요구하는 근거가 약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마을버스를 시내버스와 마찬가지로 준공영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나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준공영제가 교통 소외지역에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목적이라면 마을버스에도 도입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민영제로 계속 둘 건지, 준공영제로 넣을 건지 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