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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분신자살,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 이병문 기자
  • 등록 2019-01-20 19: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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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택시정책 실패와 열악한 노동환경이 원인…자살이 아니라 타살


▲ 지난 9일 오후 6시3분께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 앞 도로에서 화재에 휩싸인 고 임정남 씨의 택시차량.


최근 두 명의 택시기사가 카카오의 카풀앱 서비스에 반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지난 9일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 도로변에서 분신을 시도한 경기도 수원시 개인택시기사 임정남 씨(65)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그 다음날 결국 숨졌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달 10일 서울 한석교통 기사 최우기 씨(57)가 여의도 국회 앞에 택시를 세운 뒤 스스로 몸에 불을 질러 고귀한 생명을 버렸습니다.

 

이들은 왜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요? 분신은 자살방법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입니다. 분신은 바로 죽는 경우가 드물고 병원으로 옮겨져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임씨는 무려 12시간, 최씨도 1시간 동안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이들이 설령 목숨을 건졌다고 해도 죽는 것만 못한 삶을 살아갈 확률이 높습니다.

 

그동안 분신은 국가나 사회의 잘못된 것에 대한 일반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호소하기 위해 일어났습니다. 1970년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 냈습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조직을 위해 분신자살하는 사람들 마음엔 사회를 바꾸고 내가 해낼 수 있다는 정의감이나 자신감 등이 강하게 깔려있다고 합니다.

 

두 차례 일어난 택시기사의 분신도 확실히 대중의 시선을 잡아끌었습니다. 해당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고, 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다만 국민 다수의 동의를 얻는 데까지 미치지는 못한 듯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카풀도입 반대로 분신은 너무 과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40년 가까운 언론계 생활 중 절반 이상을 교통전문기자로, 아울러 택시문제를 취재해온 저의 시각은 크게 다릅니다. 그들의 극단적인 선택은 카풀에 대한 반대만이 아닙니다. 카풀도입 반대가 계기가 돼 명분으로 삼았을 뿐이지 그들의 분신자살은 평생을 로 살아온 절망감과 상실감,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택시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분노의 표출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동안 무수한 택시정책이 실패한데다 열악한 택시노동환경을 정부와 사업자들이 애써 외면해왔다는 점에서 그들의 분신은 자살이 아니라 국가적·사회적 타살이라는 확신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택시기사의 분신은 갑자기 발생한 것도, 충동적인 사건도 아닙니다. 그동안 많이 일어난 참사였으며 택시업계가 오랫동안 안고 있는 과제였으나 해결하지 못한 것뿐입니다. 198311월 택시기사 박종만 씨가 회사 측의 노동조합 파괴와 부당노동행위에 격분한 나머지 회사 마당에서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한 이후, 특히 민주화운동이 활발했던 1980년대에 꽤 많은 택시기사들이 분신자살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정확한 자료를 잃어버리고 확실히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만, 제 기억으로는 무려 18명에 달하는 택시기사들이 분신자살했습니다. 이번 두 차례 사건까지 포함하면 20명에 달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택시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경제성장과 함께 사회의 모든 분야가 빠르게 발전했는데 승객이 느끼는 택시서비스의 질은 좋아지지 않았고, 택시노동환경도 개선된 것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 택시서비스에 대해 국민의 불만이 높은 1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택시기사들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택시운송업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현재 택시는 자가용승용차의 증가와 버스·지하철 등 대중교통의 발전으로 사양 산업입니다.

 

사양 산업이라는 시대적 변화에 맞는 정책이 수립돼 시행돼야 함에도 택시는 여전히 너무나 많은 불합리한 규제 속에 묶여 있고 정부의 무책임한 수수방관 아래 놓여 있습니다. 하위층을 면치 못하고 있는 택시기사들은 그나마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아무런 법적규제를 받지 않는데다가 플랫폼 하나만 갖고 큰돈을 벌려는 카카오 카풀이 등장하자 세상은 역시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고 더욱 큰 의문과 회의가 들었을 것입니다.

 

특히 그동안 힘들고 억울한 일의 원인을 택시정책의 실패 때문으로 판단하고 있는데 불법인 카풀을 옹호하는 모습의 청와대나 정부·국회를 보면서 엄청난 분노를 느꼈을 것입니다. 분신자살한 임정남씨는 택시기사들이여. 다 일어나라. 교통을 마비시키자는 격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최우기씨도 택시근로자들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라며 이 한 몸 내던져봅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나라의 택시정책은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실패 사례의 하나입니다. 버스·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의 발달에 따라 보완교통수단으로써 택시의 기능과 역할을 살리는 정책을 폈어야 하는데 이도저도 아니면서 택시업계는 물론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게 됐습니다. 이는 온전히 정부의 잘못입니다.

 

현재 카풀을 반대하고 택시 생존권 집회를 주도하면서 정부·국회와 협상하고 있는 택시 노사 4개 단체의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택시업계를 대표하는 이들 단체들이 미래의 변화에 적극 대처하고 대응방안이나 발전전략을 모색해야 하는데 그런 계획들을 제시한 적이 없으며 무사안일하게 지낸 면이 큽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동안 수많은 택시기사의 분신을 겪으면서도 택시는 별로 나아진 것이 없으며 그때뿐이었습니다. ‘택시 달래기에 나선 정부가 준비 중인 택시기사 지원책도 뜨거운 감자를 잠시 식히기 위한 방편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과거와 똑같은 내용의 메뉴일 뿐인데 이는 지금까지 정부가 공수표를 남발해 왔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임씨와 최씨의 분신은 결코 자살이 아니라는 확신이 더 강해집니다. 거듭된 택시정책의 실패, 열악한 노동환경, 구호만 외치는 택시업계 대표단체들이 합작한 국가적·사회적 타살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번 참사에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임정남 씨와 최우기 씨의 죽음에 진심으로 애도를 표합니다.


이병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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