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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준공영제, 대수술 필요하다
  • 이병문 기자
  • 등록 2025-06-07 17:5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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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금 먹는 하마’…재정지원 효율성·책임성 높여야

울산 시내버스 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첫날인 7일 오전 울산 중구 병영사거리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시민들이 파업 사실을 모르는 듯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버스 노사가 올해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을 놓고 큰 진통을 겪는 가운데 현재 운영 중인 버스준공영제 대해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울산 시내버스 노조는 올해 임단협 협상 결렬에 따라 7일 첫차부터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다. 지난 5일 하루 총파업을 벌인 광주버스노조는 오는 9일 재파업을 예고했다. 

 

서울버스노조는 지난달 28일 첫차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던 파업을 유보했지만, 파업 가능성은 상시 열려있다. 경남 창원시의 버스 파업은 지난달 28일부터 6일 동안 역대 최장으로 진행됐다.

 

이들 지자체는 모두 버스준공영제를 시행 중인 곳들이다. 버스준공영제는 지자체가 버스업체의 적자를 보전해주는 대신 취약지역 노선을 유지하는 등 공공성을 확보하는 제도다. 지난 2004년 7월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도입한 후 광역시와 제주도, 일부 기초지자체들이 도입 운영하고 있다.

 

버스준공영제는 안정적인 버스 운행이 가능하고 운수회사가 수익에만 집중하지 않아도 돼 서비스 품질이 향상되는 장점이 있다. 반면, 과도한 재정부담 문제, 민간자본 유입에 의한 공공성 훼손 등은 한계로 지적돼왔다.

 

최근 버스 노사의 대치 상황은 표면적으로는 임금을 둘러싼 것이지만, 준공영제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사 모두 준공영제에서는 지자체가 어떻게든 재정지원을 할 것이란 믿음이 깔려있기 때문에 사실상 노사 협상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이다.

 

노조는 당연히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좋다. 버스회사는 운수종사자의 임금이 얼마가 오르던, 지자체가 적자를 보전해주기 때문에 실제 타격은 없는 셈이다. 

 

시는 기본적으로 직접적인 교섭 대상자가 아니라 적극 개입이 어렵다. 하지만 노사 합의사항이 고스란히 지자체의 재정부담으로 이어지고, 시민의 세금으로 유지되는 점을 고려하면 시가 보다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준공영제에 편승해 ‘땅 짚고 헤엄치기’식 경영을 해온 버스회사들은 서비스 질 개선에는 소극적이고, 막대한 공적자금을 받고 있음에도 감사와 회계 공개에는 미온적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시의 특정감사로 버스회사 임원 임금 부풀리기 등이 밝혀졌고, 시의회·시민단체의 날선 지적이 이어졌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구조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노조는 거의 매년 파업 또는 준파업을 예고하며 시민을 볼모로 한 투쟁을 지속한다. 이에 따라 대중교통의 공공성 강화라는 준공영제 도입 취지는 사라지고, 민간 업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시스템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준공영제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계속된 만큼 중간에 뭔가 고쳐졌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최근 서울, 부산 등이 준공영제 개선작업에 착수했거나 추진계획을 밝혀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준공영제 도입 20년을 맞아 전면적인 준공영제 개선작업을 진행 중이다. 부산시도 준공영제를 재점검할 계획이다. 경남 창원시도 전문기관에 의뢰해 준공영제 개선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버스준공영제는 버스회사의 구조적 재정 적자와 지속적인 인건비 상승, 시 재정 부담 확대 등의 과제가 산적하다. 개선책은 재정지원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어떻게 높이는가가 핵심이다.

 

우선 모든 업체, 노선에 일괄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할 것이 아니라 버스 운행 실적과 승객 수, 정시 운행률 등 객관적인 지표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 노선이나 버스업체 특성에 따라 민영, 보조금 운영, 완전 공영제 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하는 방안도 있다. 노선을 몇 개씩 묶어 세밀한 수익 분석에 따라 재정을 지원하는 '노선입찰제' 방식을 채택하는 유럽 등의 경우를 참고할 필요도 있다. 

 

시민의 혈세가 투입되는 이상 민간 업체라 하더라도 회계 자료를 의무적으로 공개하고 정기적으로 감사도 받아야 한다.

 

버스운송업의 ‘필수공익사업’ 지정도 제기된다.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되면 노조는 쟁의행위 시에도 필수 유지업무 인원 비율을 유지해야 한다. 현재 철도·항공운수·수도·전기·가스·통신·병원 등이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돼 있다.

 

버스준공영제는 버스회사와 노조의 이익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아닌, 시민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돼야 한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 제도가 앞으로 유지 가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수술이 필요한 때다.

 

이병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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