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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택시기사 살해 사건…범인 어떻게 잡았나
  • 이병문 기자
  • 등록 2023-07-24 18:4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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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행 현장의 쪽지문 토대로 올해 1월과 3월 범인들 검거
  • 유족들 “징역 30년 선고한 1심 형량 낮아…울분 안 풀려”

2007년 범행 후 도주하는 용의자들

세찬 비가 억수같이 내린 날이었다. 2007년 6월 30일. 토요일인데도 택시기사 A(사망 당시 43세)씨는 또 집을 나섰다. 늦둥이 1살 아들과 아내, 함께 모시고 사는 어머니까지 생각하면 돈을 벌어야 했다.

 

동료 기사와 인천시 부평구 기사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 그는 택시를 몰고 다음 날 새벽까지 손님들을 부지런히 태웠다. 오전 2시 33분쯤 미추홀구 한 아파트 앞에서 남성 손님 2명이 손짓을 했다. 택시 뒷좌석에 올라탄 손님들은 남동구에 있는 “남인천세무서(현 남동세무서)로 가 달라”고 했다.

 

1분 뒤 택시가 잠깐 멈췄을 때였다. 손님 중 한 명이 뒤에서 A씨 목에 흉기를 들이댔다. 택시 밖 빗소리와 섞여 낮게 깔린 목소리는 “움직이지 마. 말 안 들으면 죽여버린다”고 위협했다. 갑자기 택시강도로 돌변한 남성들은 A씨의 양손을 끈으로 묶었다. 미리 준비한 대형 가방도 꺼내 “안에 들어가라”고 협박했다.

 

졸지에 A씨는 택시 운전석이 아닌 뒷좌석 가방에 갇혔다. 그러나 그는 강도 중 한 명이 택시를 모는 사이 닫힌 지퍼를 열었고 가방에서 빠져나왔다. A씨는 나머지 강도와 몸싸움을 벌이다가 택시 뒷좌석 문을 열고 밖으로 도망쳤지만 끝내 붙잡혔다. 흉기에 온몸 17곳이 찔렸고 목도 졸린 끝에 숨졌다.

 

강도들은 A씨 시신을 범행 현장에 방치한 채 그의 택시를 훔쳐 몰았다. 2.8㎞ 떨어진 남구(현 미추홀구) 주택가에 택시를 버렸고 뒷좌석에 불을 지른 뒤 도주했다. 경찰은 전담반을 꾸리고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으나 용의자를 특정할 단서는 전혀 찾지 못했다.

 

2남 1녀 중 막내아들이었던 A씨와 사건 발생 직전까지 함께 살던 그의 어머니는 영문도 모른 채 큰 딸 집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A씨의 어머니는 6·25 전쟁 때 남한으로 온 실향민 출신으로 막내아들인 A씨를 끔찍이 아끼셨다다.

 

가족들은 차마 막내아들이 살해됐다고 말씀드릴 수 없어 A씨의 어머니는 끝내 모르셨고 사건 발생 2년쯤 뒤에 돌아가셨다.

 

경찰은 장기간 용의자들을 특정할 단서를 찾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제사건으로 남겨질 가능성이 점점 커져갔다.

 

2016년 담당 경찰서에서 사건을 넘겨받은 인천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은 수사 기록과 현장 자료 등을 다시 분석했고, 지문 재감정과 관련자 조사 등 보강 수사를 벌였다.

 

경찰은 택시 방화 현장의 폐쇄회로(CC)TV에 찍힌 흰색 번호판 차량을 특정하기 위해 같은 종류의 차량 9만2000대를 재차 분석했고 이후 의심 차량을 990대로 압축했다. 의심 차량의 전·현 소유주 2400명을 직접 만나는 한편, 택시에 불을 지를 때 사용한 차량 설명서 책자를 여러 차례 감정한 끝에 쪽지문(작은 지문)을 찾아냈다.

 

경찰은 쪽지문을 대조하는 과정에서 A씨를 용의자로 특정한 뒤 지난 1월 체포했으며 추가 수사를 통해 3월 B씨도 공범으로 붙잡았다.

 

강도살인 혐의로 붙잡힌 주범은 B(47)씨, 공범은 C(48)씨였다. 둘은 2000년 절도 사건으로 각자 인천구치소에 수감됐다가 서로 알게 된 가장 친한 친구 사이였다. 사건 당시 특별한 직업이 없던 이들은 생활비가 부족하자 범행을 계획했고 미리 흉기와 운동화 끈도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16년 전 남편을 먼저 보낸 A씨 아내는 당시 1살인 아들을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지금까지 혼자 식당 일을 하며 힘들게 키웠다. 당연히 아버지 얼굴을 기억 못 하는 아들은 범인들이 검거된 이후 기사를 보고 사건을 자세히 알았다.

 

주범인 B씨는 재판에서 "사건 발생 당일 범행 현장에 없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고, 공범 C씨도 "친구와 함께 강도 범행은 계획했지만, 살인은 같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들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지난 20일 선고 공판에서 징역 30년을 각각 선고했다.

 

피해자 유족들은 16년 동안 범인이 잡히지 않아 겪은 고통에 비하면 형량이 너무 낮다며 울분을 토했다. A씨 누나 이모(67)씨는 "이렇게 오랫동안 범인을 못 잡을 줄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않았다"며 "가족들 모두 동생을 가슴에 묻고 지냈는데 올해 들어 범인들이 잡히면서 또다시 힘들어졌다. 법정에서 반성도 하지 않는 범인들을 보면 형량이 너무 낮다“고 울먹였다.

 

A씨 매형도 "먼저 검거된 주범 B씨가 기소된 이후에 공범 C씨가 잡히면서 형평성을 이유로 둘 모두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다"며 "수사 단계에서 신상 공개를 해야 했는데 아쉽다"고 토로했다.

 

B씨는 선고 다음 날인 지난 21일 변호인을 통해 항소했다. 피고인들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한 검찰은 항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판결문을 검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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